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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30살 유학을 결심한 이유, 어학연수 및 워홀: 얻은 점과 잃은 점

 

30살 유학을 결심한 이유

나는 수학을 좋아하고 영어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 영어시험하면 아직도 생각나는 날이 있다. 고등학교 영어 내신 시험 전날이었다. 당장 시험이 바로 다음날인데 책에 꼬부랑거리는 글씨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해석하지 못했다. 결국 불안함에 눈물이 났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산책을 제안했다. 엄마는 시험 점수를 잘 받지 못해도 괜찮다며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영어학원을 알아보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시험은 예상대로 아주 말아먹었다. 그 뒤로 학원을 다니며 '영어 내신 성적'은 곧잘 받았지만(내신만 괜찮은 정도였지 모의고사는 5등급 정도였던 것 같다..) '영어' 자체에 흥미를 느낀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고 영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고등학교 이후 통계학과에 입학한 나는 영어와는 담쌓고 지냈다. 그러던 중 23살,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자 취업 회피 목적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이 시기에 영어에 대한 내 관심도가 완전히 바뀌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이 없었다. 영어를 입밖에 내지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호주에 혼자 갈 생각을 했었을까. 어찌되었든 나는 이 계기로 인해 영어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영어실력이 워낙 저조했던지라 (단어 하나 내뱉기도 힘들었다) 1년 워홀생활을 마치고도 영어실력이 형편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열심히 배워봐야겠다'라는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영어 스킬을 크게 늘리지는 못했지만 영어를 극혐하던 내가 영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어서 큰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호주에 다녀와서 영어공부를 했으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산적이고 목표의식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보다 영어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다보니 영어의 중요성을 잊게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필요성을 느껴야 공부해야겠다는 다급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가끔 긴급하게 호주 현지 여행업체에 전화할 일이 생겼고 그때마다 정말 큰 좌절감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 사건은 영어가 부족해 쩔쩔매는 나를 내 상사조차 도와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사람도 영어를 못했기에.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내가 정말 열심히해서 승진을 빨리해도 정작 내가 내 스스로에게 만족할만한 실력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부하직원 한명 도와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얼마나 자괴감을 느낄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0살, 늦은 나이에, 빠른 승진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 내 진짜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얻은 점
1. I L♥ve English

평생 영어를 놓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과 꼭 영어를 잘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말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영어 공부를 손에서 놓은 날이 없다. 그런데 정말 죽기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좋아서 공부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할 때에는 공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드쉐도잉, 원서 읽기, 팟캐스트 듣기 등)

2.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

한국에 있으면 가족, 친구, 동료 등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정작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캐나다에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물론 외롭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진 시간이 되었고 그 덕분에 내가 진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등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3. 새롭고 더 큰 꿈

캐나다에 있으면 잠시나마 나이에서 오는 한계를 잊게되는 것 같다. '나는 그걸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라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한계를 두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자기계발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예전에는 '나까짓게 어떻게 그걸해'라며 포기했던 꿈들을 다시 꾸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가족, 친구들에 대한 소중함도 다시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고 독립적이고 내면이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잃은 점
1. 경력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부분이자 20대 후반을 넘었다면 유학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사에 다녔던 나는 캐나다로 와서 여행블로그를 운영하면 한국에 돌아가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블로그를 시작한 케이스이다. 물론 여행사로 돌아갈 생각을 접었고 코로나 때문에 블로그에 소홀해졌던건 사실이지만..하핫 나는 유학에 와도 본인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분야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계획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내가 항상 믿는건 '경력보다는 실력이다.' 라는 것이다. 꾸준히 노력해서 내가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다면 경력 단절이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우리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많다.

2. 내 영어실력에 대한 만족도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물론, 호주에서 워홀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영어권 1년 생활로는 영어가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현재 내 영어 실력이 이 곳에서 생활한 시간에 비해 저조하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자괴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차라리 공부를 안했으면 속이 상하진 않았을텐데, 나름 열심히 하고있는데 늘지않는 내 자신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목표를 이룬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슬럼프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3. 돈

영어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유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 유학생활은 돈이 정말 많이 든다. 무엇보다도 방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유학을 결심했다면 한국에서 최대한 열심히 돈을 모아오기를 바란다.(워홀은 제외. 어학원 이상 어학연수를 할 경우) 그렇지 않으면 돈과 영어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내가 여기서 뭐하고있나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가 정말 위험하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를 갖고있다면 충분히 생활비를 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돈이 없어서 유학을 못가'라는 핑계는 접어두는게 좋을 것이다. 

 

유학을 후회할 때 

내가 생각했을때 타지 생활은 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감정을 가져다주는것 같다. 차라리 욕심이 없다면 마냥 즐길 수 있다. 사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는 정말 생각없이 갔던지라 마냥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온 유학생활이라 그런건지, 욕심이 많아져서 그런건지 이번 어학연수는 압박감과 외로움, 불안함을 자주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30살, 직업을 그만두고 캐나다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맹새코 단 한번도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스스로가 여러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학연수 혹은 워킹홀리데이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고싶은것을 포기하기에는 우리는 아직 너무 젊고 세상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천국을 기대하지는 말자.